한국의 여행지 (21)-악양 최참판댁 옆의 시인댁...파피루스 문학기행
시인 박남준...
그가 파피루스와의 동행 길에 들어온 것은 불과 두 달전,
매년 가는 파피루스 문학기행을 시인 김용택님과의 만남 행사로 잡자고자 임실로 하자고 거론하고 있던 중 하얀나라님의 부군 친구분이신 박남준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모든 회원들이 그분을 뵙고 싶다했다.
특히, 프리다님의 십이년 넘는 동경에 자연스럽게 지리산 악양의 박남준시인에게로
우리의 문학기행이 정해졌다
문학기행을 가기전 하얀나라님과 먼저 답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3월말,
아직 쌀쌀한 바람이 봄을 오는 것을 가로 막고 있던 삼월의 마지막 토요일
동선과 시간을 염두에 두면서 지리산의 한 귀퉁이 악양마을로 발길이 향하고 있었다.
처음가는 길이라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아직 피지않은 꽃들이 살짝살짝 바깥을 엿보고 있는 그길을 달려서
악양의 언덕빼기에 올랐다.
이런~~
공사로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막다른 골짜기, 저기 꼭대기에 여기가 끝이라는 듯 지키고선
파란지붕의 집이 보인다.
그동안 변해버린 저질체력을 안고 헉헉대며 올라갔을때,
반평의 텃밭에 이름모를 꽃들이 배시시 웃으며 수줍은 햇살 뒤로 숨어
우리를 반겨줄 뿐,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아무도 안계세요?.”
하얀나라님은 전화기를 연신 돌리고 이곳저곳이 신기한 나는 한곳에 있지 못하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눈에, 가슴에, 사진에 담기 바쁘다.
벌써 겨울을 대비해서일까? 장작이 수북히 쌓여있고 바람에 흔들거리는 풍경이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하고 누군가 긁적거리고 간 메모장,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다고 적혀진 매달아놓은 메모장한권, 우편함으로 보여지는 편지상자, 텃밭에 꽂아둔 분홍 바람개비, 언제 쌓았는지 이끼가 조금 아주조금 끼인 돌탑, 그옆에 물이 가득 고인 작은 돌로만든 물통(?) 두 개
그리고 악양편지라고 씌여진 커다란 나무간판....
빈지게를 지고 지나시는 동네 어른분에게 기어이 말을 시켜본다.
“어디가세요?”
노인의 등에 매달린 빈 지게는 노인의 나이만큼 먹었는지 오랜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산에가요.”라며 해맑게 웃으시는 입가엔 세월이 남긴 상흔이 휭한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진 이빨의 행방을 짐작하게 하고, 눈가엔 검은 주름이 훈장처럼 함께 웃는다.
그리곤 멀어지는 노인의 모습 뒤로 쏟아지는 햇살이 무척이나 여유롭다.
궁금증이 동하여 막무가내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 가보았다
햇살이 창을 비집고 들어 한가운데 앉은 나무탁자위에서 누군가 마시다만 찻잔에 앉아
어제 산에서 꺽은듯한 산수유를 유혹하고 있었다.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진한 외로움...,
아마, 반쯤 식어버린 한개의 찻잔때문일꺼야 라고 생각해보지만,
그건, 여태 혼자 살아온 순수한 영혼의 오로라인것 같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오는 박남준 시인의 모습...
지리산 자락의 필부의 모습을 하고 햇살에 검게 타버린 건강한 피부빛으로 나타난 그는
오래전 봐왔던 내고향 누군가의 모습과 닮아있다.
수줍은듯, 인사를 하고 어딘가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봐도 무척 바쁜듯한데..,
아니나 다를까, 바쁘시다며 황급히 안으로 들어간다.
나와 박남준 시인의 첫만남이다.
눈부신 삼월의 어느날, 섬광처럼 다가온 박남준시인은
그후 한달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꽃이 핀다, 꽃이 진다.”, “지리산산방일기”, “공지영의 지리산행복학교”, “다만 흘러듣는다.”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등 책속에서 한층 가깝게 내게 다가왔다.
답사일정은 그후 계속되어 참게탕을 잘하는 식당과 화개장터등을 몇군데 돌아보고
진주에 들러 진주냉면까지 한그릇 비우며 가장 재밌고 가장 합리적인 동선으로 문학기행 일정을 짰다.
그리고 어느새 한달의 시간이 지나,
4월21일이 되어 우린 지리산의 한자락에 앉아 지리산이 되어 버린 악양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난밤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에 모두들 이번문학기행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있었다.
준비물이 많은데다가 비까지 내려, 어찌할바를 몰라 가람님께 sos를 쳤으나, 가람님마저 비에 젖게 할 수 없어 차를 가지고 서면에 짐을 내려두고 다시 집에 차를 가져다놓는 방법을 선택했다.
비로 인해 처음부터 순탄치 않은 문학기행이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비를 탓할소냐?
나는 이비가 오히려 고맙다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차가 막혀 구경을 못할것이지만, 비가와서 편한 여행을 한다고까지 했다.
이 주문이 이번 문학기행내내 통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채....
예년과 마찬가지로 지리산을 향하는 버스안에서 각자의 소개및 노래로 시간을 보냈다.
하얀나라님께서 초대해서 오신 여우생각(아이디)님과 스핑크스님의 초대손님 서현미님과
나의 게스트 이명아를 위한 자기소개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새솔님의 “그때 그사람”이 낭랑한 목소리로 불리어지고
프리다님과 어차피소년님의 노래...,
비는 추적추적 지짐 뒤집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오지만,
버스안에서의 여흥은 계속되고 어느새 도착한 동매리 119-2번지 400m전.
그때까지도 억울하게 야단맞은 아이처럼 비는 세차게 내렸다.
앞에 보이는 박남준 시인의 집은 한달전 보았던 그날보다 더 청초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리는 비에 목욕하고 다소곳이 앉은 반평의 꽃들도 그날보다 더 큰키를 자랑하면서
그날처럼 웃고 있었다.
우리를 기다린듯 나오는 박남준 시인의 밝은 미소가 빗속에서 빛났다.
원거리 흠모형이라던 프리다님의 눈빛이 더욱더 빛났고 시인의 옆에서 찍어대는 사진에 폼을 잡는 회원들을 모습은 천진스런 아이들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좁은 박남준 시인의 거실에 20명의 회원모두가 들어갔다.
그리고,
손수 하나하나 잔을 데우고, 직접 만든 발효녹차를 우려 파피루스 전회원들에게 차를 건네는 박남준시인의 모습은 마치 신성한 재를 올리는듯하여 감히, 내가 하겠노라 말을 붙일수 없었다.
그리하여 주는대로 마시는 발효녹차는 입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듯 내 몸으로 기어들어 왔다.
곧 이어지는 박남준 시인의 “봄편지”의 태동 경위와 시낭송....
카랑카랑한 시인의 목소리는 찻잔속에 피어나는 청매화처럼 우리를 설레이게 했다.
잠시 앉았다가 가자는 그 잠시가 어느새 한시간 반을 훌쩍 넘기고 식당의 예약시간 때문에 일어나야했고, 다행이도 박남준 시인이 우리와 동행하기로 했다.
지난번 잠시 보고 훌쩍 떠버린 그 시인이 아니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비가와서 일을 할수 없어서란다.
주문을 외운대로 정말 비는 행운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의 위력을 또한번 느낀 시간이었다.
미리 예약된 참게탕과 은어튀김이 우리상에서 먹음직스럽게 모락모락 피어났다.
맛깔스러운 반찬들이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내가 선정한 참게탕 메뉴는 모두들 만족스러워했다. 다행이다.
이집의 사연인즉, 참게가리장이 오늘의 참게탕으로 변한것이다.
답사하는날 이집을 소개받아 와서 참게가리장이 맛있다하여 참게가리장을 시켰다.
먹음직스럽게 나온 참게가리장엔 수제비도 들어있었다.
문학기행의 점심메뉴는 바로 이거다!
그러던중 그다음주에 다시 찾게 된 이집에서 똑같은 참게가리장을 시켰는데...
아! 글쎄 나오는 참게가리장엔 수제비도 없고, 걸쭉하니 탕수육 같았다.
주인장을 불러 참게가리장 달라고 지난번에 먹었을 땐 맛있었고,
수제비도 있었다고 말했더니, 주인왈~ 그건 참게탕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먹은 것은 참게탕이고 두 번째 먹은 것이 참게가리장인 것이고
참게가리장엔 가리(가루의 사투리)를 넣은 것이란다...
이런 기막힌 사연 끝에 참게탕이 점심메뉴가 되었던 것이었다.
만약, 참게가리장을 메뉴로 정했다면 어떤 실패가 있었을까?
그날 참게가리장을 그대로 남긴것을 본다면 분명 선택에 실패를 맛봐야했을 것이다.
숙소로 가는 길에 섬진강 모래사장의 평사리 공원에서 비와 모래와 강바람을 맞으며
모두들 오래전의 이야기로 추억을 꺼내들었다. 박남준 시인의 인기는 그때 부터 시작되었나보다.
박남준 시인댁에서의 예상치 못한 지체시간으로 우리가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3시쯤..
다행이 박남준 시인이 안내해서 헤매지 않고 곧바로 찾을수 있었다.
남녀 한 채씩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푼 다음 박남준 시인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박남준 시인은 강의에 앞서 펜을 들어 우리가 가져온 본인의 책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무려 한시간이란 긴 시간을 일일이 책에 사인을 했다.
“차이코프스키가 들려오는 시베리아 자작나무 같은”, “그대안에 쌓아올 탑하나 생명과 평화로 가는 길.”등 귀엽고 앙증맞은 그림과 함께 박남준시인의 책 앞에 물들여 지던 그분의 사인....
팔이 아플만도 한데... 쉬지않고 계속 정성스럽게 사인을 했다.
그리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후
박남준 시인의 잔잔한 음성으로 우리의 생과 다르게 살아온 본인의 삶의 방식과 삶의 철학,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 등을 들려주었고,
시인의 목소리로 시인의 시를 낭송해주었다.
나의 짖궂은 질문도, 진지함을 담아 대답을 해주셨다.
저녁은 내가 가져간 삼겹살과 프리다님의 김치, 및 여러 가지 반찬들..., 하얀나라님의 상치등으로 차려졌고, 좁은 남자들의 숙소에서 따닥따닥 붙어 앉아 젓가락질을 해야했다.
삼겹살과 전복이 잘 어울려져 맛있었던 기억에 준비한 전복은 금새 바닥이 났다.
함께 했던 시간, 함께 했던 음식, 함께 했던 감동... 많은 것들이 그시간, 그장소에
아직도 머물러 있을것만 같다.
그렇게 날이 저물어 박남준 시인과의 아쉬운 시간이 흘렀고,
함께 자고 가도 된다는 붙잡음도 마다하고 근처 옻공예를 한다는 지인을 불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내일아침은 옻칠공예에 대해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 계속되는 과음으로 옻칠공예하시는 분을 넉다운 시켜 우린 옻칠공예를 보지 못하고 말았다. 내평생 어디에서 옻칠공예를 볼수 있을런지?....하하하.. 정말 아쉽다
그날밤...,
오순도순 속삭이는 언어들로 잠못들어 하는 이,
코고는 소리에 잠 못드는 이... 숱한 변명으로 잠 못들어 하다 맞이한 아침은 더욱더 청아했다.
간밤에 내린 비 때문이었으리라....
쨍쨍한 날씨탓에 박남준 시인은 차를 따야한다며 잠시 얼굴을 보여주고 짬뽕이 맛있다는 대북반점 앞에서 손을 흔들어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또 다른 이의 차를 위해 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듯 했다.
남은 이는 혼자에 떠나는 이는 스무명...,
외로울 만도 한데, 외롭지 않다는 듯 세차게 손을 흔들어준다.
또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ㅋㅋㅋ
남은 삼겹살과 소주, 그리고 과일을 박남준 시인에게 드리려 전날 늦게 혼자 차를 가지고 오신
따꼬님의 차로 시인댁으로 가던길에 스쿠터를 타고 내려오는 시인과 마주쳤다.
처음엔 노란 헬멧에 박남준 시인이라고 세워놓고 하얀나라님 "아니다"라는 한마디에
"미안합니다"라고 스쳤다. 근데 올라가보니 그때 그 노란 헬멧의 스쿠터가 박남준 시인이 었던 것이다.
하얀나라님..."내가 아니라고 했다고 말하지마세요." 그러나
따꼬님의 착한 행동에 우린 모두 웃었다. 박남준 시인도 용만이 각시가 그렇게 할줄 몰랐다는 표정으로 함께 웃었다.
사실, 나도 스쿠터를 타고 머리를 휘날리며 내려오리라 상상했던것을 노란 헬멧을 어디까지 눌러 쓰는 바람에 볼이 터져라 그렇게 눌려질진 몰랐던 탓에 아닌줄 알았던 것이다.
아쉬움으로 악양을 떠나지 못한 우리는 “최참판댁”에 머물러 잠시나마 지리산 근처를 돌며
희미해지는 그의 체취를 맡고 있었다.
봄날씨답게 상큼한 햇빛과 바람에 벌써 져버린 벚꽃을 대신 하느라 핀 유채꽃과
참꽃들이 많이 변해버린 “최참판댁”에서 다소곳한 모습으로 파피루스 일행을 맞이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이곳저곳을 함께 사진에 담기도 하고...,
독서 모임 답게 그곳에 새로 생긴 북카페에 자연스럽게 모였고, 차한잔의 여유와 감동으로 시집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저러한 시간이 흘러 점심을 문산에 있는 염소불고기로 배를 채우고 진주촉석루와 남강을 가기로 했던 일정을 뒤업고 차가 막힐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바로 부산으로 돌아왔다.
1박2일의 짧은 시간에, 행복은 타인과 비교하지 않을 때 온다는 것과 모든 생명에 사랑을 심어줄수 있는건 시인이며, 그 시인이 살아가는 우리와 다른 방식의 삶이 결코 외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들었고, 또 그렇게 사는 삶이 잠시 부럽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필요하지 않는 삶...., 나는 갈수 없는 길이라서 나는 그 길이 부러운지 모르겠다.
이번 문학기행의 가장 큰 테마는 생을 시로 풀어가는 박남준 시인의 삶과 그의 시가 아닐까 생각되어 진다.
그곳을 다녀온후 이름모를 앓이로 복잡해진 나의 머리는 아직도 안개속이다.
이러다 나도 지리산에 터를 잡지 않을까? 걱정이다...ㅋㅋㅋ 난 겁도 많은데... 박남준시인이 모악산에 있을땐 귀신도 퇴치했다고 하던데... 시인 박남준, 그와의 통(通)으로 우리의 가치관엔 변화가 많이 올것 같다.
어찌되었던...,
우리의 문학기행은 여지껏의 문학기행과 색다른 “시인과의 만남”이어서 더욱 뜻깊었다.
내년 2013년도의 문학기행도 기대해본다